이억원 금융위원장은 25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 챔버 라운지에서 ‘생산적금융 대전환’ 네 번째 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에는 관계부처와 유관기관, 경제단체, 이해관계자, 전문가들이 참석해 우리 경제와 기업의 녹색 전환(GX)을 위한 금융 과제를 집중 점검했다.
“탄소중립 시대, ESG 대응은 선택 아닌 필수”
이 위원장은 모두발언에서 정부가 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제시하고 ‘한국형 녹색전환(K-GX)’을 추진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기후를 포함한 ESG 요소에 대한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며, ESG가 생산적 금융의 핵심 과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ESG 투자는 단기간에 성과가 드러나기 어렵다는 점을 짚으며, 공공 부문의 모험자본 공급과 관련 인프라 구축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금융위 “ESG 공시 제도화·기후금융 활성화가 두 축”
금융위원회는 금융시장의 녹색 전환을 뒷받침할 핵심 과제로 ▲ESG 공시 제도화 ▲기후금융 활성화를 제시했다. 이와 관련해 그간 논의를 토대로 마련한 ESG 공시 로드맵(의견수렴안)을 공개하고, 공시 도입 시점과 대상, 공시 범위(스코프3 포함) 등 주요 쟁점을 설명했다.
ESG 공시, 2028년부터 ‘대형 코스피’ 단계 적용 검토
로드맵(안)에 따르면 ESG 공시는 2028년(FY27)부터 연결자산총액 3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에 우선 적용하는 방식으로 단계 시행을 검토한다. 공시 첫 해에는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국내외 종속회사(예: 연결 기준 자산·매출 비중이 10% 미만인 종속회사)를 한시적으로 공시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금융위는 해외 주요국 동향과 국내 기업에 대한 해외 공시 의무 적용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스코프3는 2031년부터…소기업 면제는 ‘조건부’
기업 가치사슬 전반의 배출량에 해당하는 스코프3 온실가스 배출량은 산정·추정 인프라를 갖춘 뒤, 원칙적으로 2031년(FY30)부터 공시를 시작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다만 ‘중소기업기본법상 소기업’이면서 고탄소 배출 업종이 아닌 가치사슬에 대해서는 공시를 면제하되, 제도가 안정화돼 자본시장법상 공시로 전환된 이후 면제 범위를 재검토한다는 방향도 제시됐다.
거래소 공시로 시작…초기엔 ‘면책’ 적용, 계도 중심 운영
공시 채널은 우선 거래소 공시로 운용하고, 제도 안착 이후 법정 공시로 전환하되 전환 시점은 의견수렴을 통해 확정하는 방안이 담겼다.
또 기업들의 제재 부담을 고려해 제도 초기에는 예측·추정정보를 활용한 공시에 대해 ‘세이프 하버(Safe Harbor)’를 허용하고, 처벌보다는 계도 중심으로 운영하겠다는 방침도 내놨다.
공시 시점은 원칙적으로 연말 결산 기준(3월 말)을 따르되, 온실가스 배출량 정보는 인증 시점 등을 고려해 반기 결산 기준(8월 중순) 공시를 허용하는 방향이 검토된다. 제3자 인증 의무화는 초기 자율을 원칙으로 하고, 국제 동향을 반영해 단계적 의무화 및 인증기관 규율체계 마련을 살핀다는 계획이다.
‘국내 지속가능성 공시기준’…ISSB 기반, 일부 선택 공시 허용
국내 ESG 공시기준(지속가능성 공시기준)은 글로벌 정합성을 고려해 ISSB 기준을 토대로 마련됐다. 제조업 비중이 높은 국내 산업 구조를 감안해 기후 외 항목이나 내부탄소가격, 산업별 지표 등은 선택 공시를 허용하는 방향이 포함됐다.
초안에 담겼던 정책공시(제101호)는 국제적으로 기준이 정립되지 않았다는 점과 국내 기업 역차별 우려 등을 고려해 최종 기준에서는 우선 제외하고, 향후 사회(S) 분야 국제 기준이 마련될 경우 재검토한다는 방침이다.
금융위는 이번 의견수렴안을 3월 말까지 수렴·검토한 뒤 4월 중 로드맵을 확정·발표하고, 거래소 공시규정 개정 등 후속 절차도 신속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기후금융 790조원 공급 추진…“지방·중소중견에 집중”
금융위는 2035 NDC 상향에 발맞춰 ‘기후금융 활성화 방안’도 함께 제시했다. 핵심은 정책금융기관을 통해 2026~2035년 총 790조원 규모의 기후금융을 공급해 감축 목표 달성을 뒷받침하겠다는 구상이다.
기존에 추진하던 기후금융 공급 계획(2024~2030년 420조원)보다 기간과 규모를 넓히고, 공급 물량의 50% 이상을 지방에, 70% 이상을 중소·중견기업에 투입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고위험·장기 자금이 필요한 분야에 정책금융이 선제적으로 역할을 하면서 민간 자본의 참여 확산을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한국형 전환금융’ 도입…고탄소 업종의 저탄소 전환 지원
또 하나의 축은 ‘한국형 전환금융(Transition Finance)’ 도입이다. 재생에너지 등 친환경 활동 중심의 녹색금융과 달리, 전환금융은 철강·화학·시멘트 등 고탄소 업종이 설비 효율화, 연료 전환 등 감축 활동을 수행할 때 필요한 자금 지원까지 포괄한다.
금융위는 유관기관·금융권·전문가 논의를 거쳐 전환금융 도입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했고, 관계부처와 함께 ‘전환금융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가이드라인은 K-Taxonomy 기반 전환금융과 업종별 감축 로드맵 기반 전환금융을 함께 포괄하는 방식으로 정의를 제시했다.
정보 인프라 강화…‘기후금융 웹포털’·‘금융배출량 플랫폼’ 구축
기후금융이 시장 전반에 안착하도록 정보 인프라도 고도화한다. 신용정보원을 중심으로 산재된 관련 정보를 통합 제공하는 ‘기후금융 웹포털’을 구축해, 금융사가 K-Taxonomy 해당 여부를 보다 신속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대출·투자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발생하는 ‘금융배출량(스코프3)’을 관리할 수 있도록 ‘금융배출량 플랫폼’도 마련한다. 기업별 배출 데이터(중소·비상장사는 추정치 포함)와 글로벌 표준(PCAF) 기반 산출식을 제공해, 금융회사별 데이터 수집·시스템 구축 부담을 낮추고 비교 가능성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금융위는 두 인프라를 금융권이 자율 판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신뢰도 높은 레퍼런스로 운영하고, 시범 운영 과정에서 현장 의견을 반영해 보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공시체계 마련하고, 금융이 K-GX 조력자 역할 해야”
이 위원장은 “기후위기는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국민 삶에 직결된다”며, 기업 공시체계 정비와 기후금융 확산을 통해 K-GX가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금융이 중추적 역할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금융위는 향후 실무 워킹그룹을 구성해 공시 정착과 기후금융 활성화에 필요한 보완 사항을 지속 논의·지원할 방침이다.
로드맵의 ‘시점’보다 더 중요한 건 ‘현장 수용성’이다. 기업이 따라갈 수 있는 공시 체계와 금융이 실제 투자로 연결되는 실행력이 갖춰질 때, K-GX는 선언이 아니라 성과가 된다.
[비즈데일리 장대성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