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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재외동포청, ‘이달의 재외동포’에 故 오기문 전 재일대한부인회장 선정

재일민단 결성, 재일대한부인회 창립 등 재일동포사회 조직화에 기여

 

재외동포청이 2025년 12월 ‘이달의 재외동포’로 故 오기문(1911~2014) 전 재일대한부인회장을 선정했다.
오 회장은 재일민단과 재일대한부인회 창립에 기여하고, 사할린 무의탁 동포를 위한 양로원 설립 등 헌신적인 활동으로 재외동포 사회 발전에 큰 족적을 남겼다.

 

■ 삯바느질로 시작한 삶, 재일동포 사회의 어머니가 되다

1911년 경북 고령에서 태어난 오기문 회장은 18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남편과 사별한 후 삯바느질로 속옷을 만들어 생계를 꾸렸다.
그의 근면한 삶은 일본 주요 언론에 ‘본받아야 할 조선의 모범 부인’으로 소개될 만큼 큰 감동을 주었고, 이후 사회운동가로서의 길을 걷게 되는 계기가 됐다.

 

오 회장은 경제적으로 자립한 뒤 재일동포들을 위한 구호 활동과 사회운동에 적극 나섰다.
특히, 억울하게 체포된 동포들을 돕는 일에 헌신해 ‘여번호사’로 불리며 존경을 받았다.

 

■ 재일민단·대한부인회 창립 주도…재외동포 여성운동의 시초

1945년 박열 선생과 뜻을 함께한 그는 1946년 ‘재일신조선건설동맹’을 결성하고, 200만엔의 기금을 지원했다.
이 단체가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의 모체가 되었으며, 오 회장은 초대 부녀부장으로 선임됐다.

 

이후 그는 허정숙 여사와 함께 1947년 8월 재일대한부인회 도쿄본부를 창립, 2년 뒤인 1949년에는 일본 전국 조직으로 확대해 여성 사회운동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녀의 리더십은 일본 내 한인 여성들에게 ‘동포 여성의 연대와 자립’이라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 조국 위한 봉사와 구호활동…6·25전쟁 당시에도 앞장

오 회장은 6·25전쟁 발발 당시 일본 도쿄 거리에서 구호 모금 캠페인을 주도하고, 의약품과 담요를 모아 한국으로 전달했다.
또한 일본 병원에 후송된 연합군 병사들을 위한 위문활동에도 참여하며 국제적 인도주의 실천에 앞장섰다.

 

■ 사할린 동포 위한 양로원 설립, 평생의 헌신

오 회장은 사할린 강제이주로 고국에 돌아오지 못한 동포들의 사연에 깊이 공감하며, 이들을 위한 요양시설 설립을 결심했다.
자비로 약 10억 원을 마련, 수십 차례 한·일을 오가며 1987년 고향인 경북 고령 쌍림면 매촌리에 **‘(사)대조구국원’**을 설립하고, 1993년에는 ‘대창양로원’을 개원했다.

 

그동안 이곳에서는 사할린 귀국 무의탁 노인 145명이 여생을 보냈고, 현재도 7명의 사할린 동포와 44명의 노인이 생활하고 있다.

 

■ 헌신의 삶, 국가가 인정하다

오 회장은 평생을 동포와 조국을 위해 헌신한 공로로 1978년 국민훈장 동백장, 1996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훈했다.
그의 삶은 재일동포 사회뿐 아니라 대한민국 근현대사 속 여성 지도자의 모범으로 기록되고 있다.

 

■ 김경협 청장 “오기문 회장은 조국과 동포를 위한 헌신의 상징”

김경협 재외동포청장은 “오기문 회장은 일평생을 조국과 동포들을 위해 바친 분으로, 그녀의 숭고한 업적은 후대에 길이 기억될 것”이라며 “그 뜻을 기리기 위해 12월의 재외동포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오기문 회장의 생애는 개인의 성공을 넘어, ‘나눔과 헌신’이 어떻게 공동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귀감이다. 그의 이름이 단순한 역사적 인물이 아닌, 오늘날 재외동포 사회의 정신적 유산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비즈데일리 유정흔 기자]